‘제4회 전대미문 (강연콘테스트) 수상 후기’라 쓰고
‘2019년이 내게 준 깨달음’이라고 읽는 TMI [긴글 주의]
안녕하세요, 긴 글이라 구어체로 바로 시작 하겠습니다 :-)
강연. 이것은 나의 오랜 즐거움이었다. ‘세바시’나 ‘TED강연’을 보는 것을 좋아했던 나, 그리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선망하던 나였다. 나는 고등학교 때, 김창옥 강사나 김미경 강사처럼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강사가 되려면 어디학과를 가야하냐”고 학교 선생님께 묻기도 했었고, 돌아오는 답은 “그걸 하려고 가는 학과는 딱히 없다.”라는 답변이었다. 그렇게 나는 ‘언젠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 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고, 그래서 성공하고 싶었다. 성공을 해야, 강연자로 불러줄 테니 말이다.
전남대학교를 들어와 1학년 때 우연히 ‘굿보이스토리’라는 강연을 듣게 되었고, 이때부터 팀 ‘영보이스토리’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무대는 ‘성공을 한 사람이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도 강연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고, 그러한 기회의 장을 만들어준 그들의 노력에 감사했다. 그때부터 그들의 활동을 응원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더 흥했으면 하는 마음에 항상 친구 손을 잡고 전대미문을 1회 때부터 꾸준히 참석하곤 했었다. 그리고는 청중석에 앉아 강연자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 무대에 서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항상 청중석, 그 빨간 의자에 앉아서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2019년, 작년에 이번이 내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은 생각에 전대미문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하여 정말 마지막이 되어버렸.. 또 모르죠) 지원과정은 아래와 같았다. 1차서류지원 – 2차면접 – 합격자 선별&강연 코칭 – (본선)전대미문PT – 수상 나를 포함해서 6명의 강연자가 무대를 서게 되었고, 과분하게도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관심 덕분에, 큰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고자 한다. 2019년은 내게 정말 많은 깨달음과 성장을 안겨준 해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너무도 소중한 한해이고 올해 나의 성장 이야기를 청중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경험주의자’라고 말할 정도로 경험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학교 캠프나, 프로그램 참여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그러다가 ‘굿보이스토리’ 강연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괜찮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너무도 나를 그 경험 속에 잘 던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1학년부터 이렇게 활동하는 것을 좋아했고, 1학년을 마친 뒤 2018년에 한 학기 휴학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때의 휴학은 뒤에 닥쳐올 일에 대한 징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2018년 2학기에 복학을 하게 된 나는, 유난히 빡셌던 전공팀플수업 4개와 대외활동2개, 그 외 각종 학교 프로그램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폭풍우같은 하루하루를 넘기게 된다. ‘복학버프’란 것은 과연 실로 존재하는 것일까? 성적표에 찍힌, 4.1이라는 숫자는 처음 맞아보는 역대급 점수였다. 한 학기동안 많은 활동도 하고, 학점도 다행히 좋게 나온 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행복은 1주일을 체 가지 못했다. 그 뒤에 나는 심한 우울감이 찾아왔다. 아니 어쩌면 심한 우울감에 빠지게 됐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팀플 수업은 나를 밤샘하게 하는 일이 많았었고, 여러 ppt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뒤에 손봐야 할 장표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앞장 표지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으면 그 뒤로 넘어가지 못하는, 그래서 첫 표지만 7개씩 만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완벽주의가 나를 옭아매는 느낌이었다. 팀플 수업이 많았던 만큼 팀플의 끝은 최종발표를 향한다. 최종발표와 최종보고서가 시험 전 주에 다 몰리게 되면서, 다음주에 있을 기말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금토일, 단 3일뿐이었다. 이 속에서 엄청난 시험 스트레스를 받았다. 완벽주의 강박은 거대한 불안을 만들어냈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완벽주의가 강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불안 때문에 일을 미루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나를 생각했을 때, ‘일을 잘 미루는 사람’, ‘지각을 달고 사는 사람’, ‘콤플렉스가 있는데 고쳐지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 내려졌다. 더 이상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깊은 절망과 우울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됐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건 나의 특장점 같은데, 내가 깊은 절망 속으로 계속해서 빠져들 때면 그 깊은 구덩이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이겨내보자! 하고 툭 튀어오를 때가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다행히 그 기회를 잘 잡았다.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부산대학교 교류학생 공고가 뜨게 되고, 사회대학 CM(Career Manager)선생님과 심리학과 부전공 관련으로 면담을 신청했다가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 전공필수 수업이 1학기에 몰려있는 우리 산업공학과 특성상(2018년 1학기에 휴학을 한번 했기 때문에) 또다시 2019년 1학기에 부산대로 가버리면 2020년이 될 때까지 나의 전필은 0으로 남아있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점에서 부산대를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나의 상황과 현재 겪고 있는 우울감, 그리고 이런 나를 변화시키고 싶은 욕구를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게 “변화하고 싶다면 환경을 바꿔라, 가라!!” 라고 말씀하시며 교류학생 가는 것을 적극 추천하셨다. 그리하여 2019년 1학기, 나는 부산대학교에서의 교류생활을 하게 되었다. 과연 내가 부산대를 가서 잘 지냈을까? 천만의 말씀. 변화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던 만큼이나 내 몸은 계속해서 고장나고 있었다. 처음 2개월 정도는 정말 하루에 낮잠을 3시간씩 자면서 살았다. 밤늦게 자는 것도 아니었는데, 잠 보충을 하지 않으면 못 버틸 정도로 매일 피곤한 잠 때문에 수업 자체휴강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시험 스트레스는 급기야 과제 스트레스로 번지게 되었다. 3시간이면 끝낼 이 과제가 뭐라고 ‘완벽하게 써야지.’ 하며 밤을 새고, 또 미루며 스트레스를 옴팡지게 받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무너져가고 있을 때, 부산대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축제날 부산대의 노후된 건물 외벽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늘 밑에서 쉬고 계시던 60대 미화원께서 돌아가시는 아주 끔찍한 사고였다. 이 사고를 마주하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게 나였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현재 과제 스트레스 때문에 고통 받고 있던 상황에서 갑자기 죽어버린다면 이 얼마나 비극적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죽음은 항상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즐겨야겠다.”는 것이었다. 내일 죽어도 후회되지 않도록 말이다. 물론 이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없다. 해야 하는 일이 존재한다. 그래서 해야 하는 일을 기꺼이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해야 할 일이 너무도 고통스럽고 나를 무너지게 하는 일이라면, 가끔씩은 놓아도 되지 않을까. 그 일을 하며 고통 받다 죽는 것이 더 비극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너무 극단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름을 알아야한다. 그러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을 기꺼이 즐기는 것. 이게 인생을 보다 현명하게 사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나는 변화하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던 탓이었는지 그 외에도 많은 경험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몇줄 더 적어보자면) - 두드러기로 아프고 나서 “지금 크게 불행한 것이 없다면 행복한 것” - 팀플PTT 준비 중에 기사마다 같은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보며 “인생에 정답은 없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살면 되는 것” -“감사하는 마음” 이러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익숙했던, 그래서 잘 몰랐던. 내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행복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는데 그걸 알지 못한 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행복을 알고 사는 사람과 모르고 사는 사람의 인생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왕 사는 인생, 누리고 있는 행복을 지각하고 더 행복감을 느끼며 사는 게 그렇지 않는 인생보다 안 좋을 이유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관점이 바뀌고 많은 깨달음을 얻으며, 그리고 부산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나의 부산대학교 교류학생을 잘 마무리 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일을 잘 미루고, 여전히 지각을 하며, 콤플렉스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이 모습이 내 전부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바로 바뀌기는 어렵지만 나는 노력하고 있고, 심지어 아주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렇게 노력하고 애쓰고 있는 나를, 이제는 내가 충분히 알기 때문이다. 원래 지각을 하거나 이러면 ‘난 왜 이러지.’하며 좌절감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 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뭐 어때”라고 외치며 털고 일어나려고 노력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좌절하기 쉬운 상황에 놓인다면, “뭐 어때”하고 털어 넘기길 바란다. 이것의 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오늘의 행복을 뒤로 미루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다. 재미있는 행사나 특강이 있으면, 없는 시간도 만들어서 가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내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 행복하다. 지금 살아있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 보낼 수 있으며, 자연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을 끝으로 나의 강연을 마무리 했다. 지금까지 제가 말한 거 다 까먹어도 되니까 딱 한 마디만 기억하세요. “우리는요, 행복하려고 사는 거예요. 즐기면서 삽시다.” -전대미문 강연 비하인드 스토리- • 나는 전대미문 강연 당일 날, 6시까지 내야 할 과제를 마무리하다가 리허설을 서지 못했다. 리허설을 못하고 무대에 오른 사람은 6명의 강연자 중 나뿐이었다. 심지어 행사시작 시간인 7시 정시에 도착했다. 대표님께 7시에 도착할 것 같다고 전화를 걸자 “강연자가 정시에 도착..예린아, 쉽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다. (진짜 쉽지않다.) • 나는 등장노래에 나를 보러와준 지인들이 즐거웠으면 하는 바램에 춤을 췄는데 원래는 ‘나야 나’를 하려 했으나, 춤이 어려워서 ‘I'm so sexy’노래를 준비했다. 이 춤은 내가 산업공학과 1학년 신입생MT 때 장기자랑으로 춘 춤이다.(역시 몸이 기억한다.) • 전대미문이 끝나고 내 강연이 좋았고, 알고 지내고 싶다며 처음 보는 두 명이 번호를 따갔다.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남자가 아님에 살짝 아쉬웠다. • 11월 8일이 되던 날, 사용금액 50만원을 넘어섰다. 가장 큰 지출은 겨울을 나기위한 쇼핑과 더불어 내안에 존재하는 지름신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대미문(11월 14일)‘대상’의 상금 50만원에 대한 목적이 다분히도 뚜렷했다. 사실 강연을 하기 전에 또다시 많은 과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잠으로 도피하는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 내가 강연을 할 수 있을까?’하는 겁이 났다. 그럼에도 불안에 압도당하지 않고 기꺼이 즐기려고 하는, 그 속에서 다시 내 모습을 직면하고 노력하는 나를 보았다. 인생에 무의미한 경험은 없다고 확신한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다시 나를 직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전대미문이라는 강연콘테스트,‘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이 내게 주어졌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못했다. 혼자 리허설도 못하고 지각을 한 나를 알기에, 사실 함께 무대에 선 강연자들과 대표님께 부끄러웠다. 좋으면서도 미안하고 부끄러운. 강연이 끝난 날 밤, 만감이 교차해서 침대에 누워서도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이러한 경험을 가슴 속에 새기고 더 열심히 나아가야겠다. “뭐 어때?” 제 강연을 보러 와주었던 우리 산공 교수님과 동기 및 선ㆍ후배님들,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산공사랑 포에버입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6xVeZZ6ZuuSPxWb-MW0FIsg_cEZOWfKg/view?usp=sharing 강연 일부분 영상입니다 목소리 왜저렇죠 PS. 현재 코로나가 심해지는 시점에서 정말 방구석망나니가 되어 살고있는 본인입니다.ㅎㅎ 그런 제가 이 후기글을 들고와서 업로드하는 과정에서 괜시리 부끄러움이 들면서도 한편에는 걱정스럽기도 하네요. 혹여나..혹시라도 제가 ‘별거’인것처럼 보일까봐서요. 그래서 좀 더 생생히 제가 리허설에도 지각한 것까지 부끄럽지만 적었습니다. (저도 쓰면서 다시금 느끼지만 정말 좋지않은 습관,,어서 고쳐야겠습니다.) 사실 제가 강연했지만, “우리는 행복하려고 사는거니, 즐깁시다.”라는 이 말이 항상 실천되기는 힘들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더군다나 지금 코로나가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고려할 정도로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좋아하는 사람이랑 맛있는 것도 편히 못먹고 못 노는데, 뭘 즐기고, 무슨 행복?!’ 이라는 반문이 들면서 제 이런 말이 불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또 이제 4학년 1학기가 되는 필자의 상황으로 학년 앞자리가 바뀌니까 ‘나 뭐해먹고 살지’하며 취준생의 마음으로 막막하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자면요, 막막함과 걱정이 많이 몰려올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내가 사실 40살에서 갑자기 눈떠보니까 지금의 나이라면?’ 진짜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아직 너무 젊고, 책임져야할 가정도, 애도 없고, 잃을게 없고, 가진게 젊음. 시간이라서요. 그래서 뭐든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든요!!!! -‘내가 이걸 안하면 죽기 전에 후회하진 않을까?’ -‘너 당장 내일 죽는다면, 지금 뭐 하고 싶어?’ 후회없는 인생을 살고싶어서인지, 25살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것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고민이 될 때, 죽음을 가져다놓고 생각하면 좀 더 쉽게 결정이 되더라구요. 가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다들 하고자하는일 응원하겠습니다! 이글을 보고 계신다면 [긴글주의]에도 PS까지 읽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들 코로나 전쟁 속에서 건강 유의하시길 바라며 산공 학우분들 모두 화이팅 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복학버프의 힘을 믿습니다
지인~짜 공감합니다. 나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건, 사실 타인도 아닌 내면의 목소리 라는 것을요. 2년 전에 이 글을 봤을 때도 참 좋은 기운을 받았는데, 지금 보니 (그 사이에 또 깨달은 바가 있어) 다시금 확실히 울림있게 다가옵니다. 내가 가장 힘들때, 가장 기쁠때 언제나 함께였고, 앞으로도 평생 함께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임을,, 그래서 너무도 소중한 나를(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시켜주면서 잘 보살피고 사랑해줘야한다는것을요!
성은님의 모든 순간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