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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서면 환자많은데 돈 없어 욕심껏 진료 못해 안타깝죠”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ㅣ경향신문



ㆍ대학생 사회적기업…무료병원 ‘프리메드’ 대표 송호원


지난해 12월 민간 연구소 ‘희망제작소’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사회적기업 아이디어 대회’를 개최했다. 사회적기업은 일반 기업처럼 이윤을 추구하되, 그 수익의 대부분을 사회 취약계층을 위해 사용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말한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는 사회단체도 후원금이 끊기면 지속가능한 활동이 어렵다는 한계를 보완할 목적으로, 사회운동에 영리 기업의 운영 방식을 접목한 것이다.




희망제작소는 이 대회에서 송호원(연세대 의학과)·허주원(카이스트 경영학과)·주재영(홍익대 건축과)·신동윤(연세대 의학과)씨 등 대학생 4명이 제출한 무료 병원 아이디어 ‘프리메드(Freemed)’에 대상을 시상했다.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무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구상이었다. 재정은 기업의 광고 및 자체 제작한 디자인 제품의 판매 수익으로 마련하게 된다.


프리메드 팀은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추진력은 더 좋았다. 대회가 끝나자마나 기획안을 현실화해버린 것이다. 프리메드는 수상 2개월 만인 지난 2월7일 의료 사회적기업 프리메드의 이름으로 첫 진료를 시작했다.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흐른 지난 19일 프리메드 대표 송호원씨(23)를 연세대에서 만났다. 05학번 대학생인데도 말과 행동이 어른스러웠다. 재정 지원을 얻기 위해 대기업에 무턱대고 전화를 걸어 결국 성사시킨 사연이나, 공부와 기업을 병행하려고 잠과 이성 교제를 포기했다는 얘기를 들려줄 땐 기업의 앞날을 두 어깨에 짊어진, 영락없는 최고 경영자의 모습이었다.


송 대표는 “무료 의료봉사 동아리의 회장을 맡으면서 동아리는 지원금이 떨어지면 활동을 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했다”며 “이런 문제를 사회적기업이란 개념으로 풀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거리에서 무료 진료를 할 때 환자가 너무 많아 진료를 다 하지 못할 정도로 수요가 많다”며 “인력과 자금이 부족해 환자를 욕심껏 보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무상으로 진료하는 병원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습니까.


“지난해 9월 <보노보 혁명>이란 책에서 인도의 ‘아라빈드’ 안과 병원 이야기를 읽고 사회적기업의 개념을 알게 됐어요. 아라빈드 병원은 환자의 소득에 따라 치료비를 다르게 받아요. 가난한 환자에겐 무료로 수술을 해주고 형편이 넉넉한 환자들에겐 책정된 치료비보다 더 많은 액수를 받는 식이죠. 여기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었던 시기는 미국에서 금융위기 파동이 터졌을 때예요. 투자은행들이 파산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던 게, 그런 은행들이 잘 안 풀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동정하는 게 아니라 ‘그럴 줄 알았다’고 비아냥거리더라고요. 누군가가 하는 일의 결말이 좋지 않을 때 이런 식의 반응이 돌아오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해서 프리메드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형태를 갖추지 않아도 무료 진료 봉사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제가 ‘의청’이란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보노보 혁명>을 읽었어도 ‘참 재미있는 책이구나’ 하고 그냥 넘어갔을 거예요. 의청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간호대학 연합 봉사동아리입니다. 항상 무료 진료를 하고 지난해엔 충남 태안으로 봉사활동을 가기도 했어요. 제가 지난해 초에 의청 회장을 했는데 동아리이다보니 지원금이 떨어지면 약을 나눠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여기저기 재단을 찾아다니면서 지원금을 얻으러 다녔어요. 돈이 떨어지면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동아리의 한계를 깨닫게 된 거죠. 이런 한계점을 사회적기업이란 개념으로 풀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일할 친구들은 어떻게 모았습니까.




“희망제작소가 개최한 사회적기업 아이디어 대회에는 저를 비롯해서 4명이 출전했어요. 저한테 <보노보 혁명>을 소개해준 허주원이란 친구와 프리메드를 같이 기획했고, 디자인이 필요해서 건축하는 친구 1명, 의과대학을 같이 다니는 친구 1명도 같이 해보고 싶다고 해서 불렀습니다. 상을 받고 나니까 같이 하고 싶다는 친구들이 늘더군요.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는지 다른 대학교에서도 전화가 와요. 모든 단체가 그렇겠지만 초기엔 안정화가 우선이잖아요. 그래서 일단 아는 사람들 중에서 저희가 생각하는 인재상에 걸맞은 친구들 위주로 모았습니다. 저와 동갑인 1986년생이 제일 많고 나머지는 후배들이에요. 지금 47명이 같이 일하고 있어요.”



-프리메드의 인재상이라면.


“쿨한 친구들이죠. 예를 들어서 ‘나는 진료소 4번 나왔는데 너는 왜 3번 나오느냐’는 말은 하지 않는 친구들. 저희들 속어로 ‘찌질하다’고 하는데, 최대한 찌질하지 않은 친구들이 같이 일하기 좋아요.”


-프리메드에선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가장 중심이 되는 건 ‘프리메드 버스’입니다. 찾아가는 의료 서비스예요. 매주 토요일 서울 을지로입구역으로, 일요일엔 경기 마석으로 진료를 나가고 있습니다. 진료를 도와주시는 분들은 저희가 모은 의사 선생님 8명이 있고, 전문의 650명이 속해 있는 의사 단체가 있어요. 이 단체와 MOU(양해각서)를 맺어서 의사 선생님을 지원받는 거죠. 저희가 학생이라 직접 진료하지는 못하지만 약품을 최대한 준비해 가고 현장에서 일손을 돕습니다. 또 ‘홈 비지팅’이라고 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쪽방촌·판자촌을 방문해서 구급함을 나눠 드리는 활동도 해요. 지난 1일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첫번째 홈 비지팅을 했어요. 말씀도 제대로 못 하시는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당뇨로 발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어요. 그런 경우는 저도 교과서에서만 봤는데, 할아버지는 이게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모르시더라고요. 의료진이 직접 찾아가서 봐주지 않으면 모르시는 거예요.”




의료 사회적 기업 ‘프리메드’의 의료진이 지난 21일 서울 을지로입구역에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김기남기자



“공부-기업 병행하려고 잠과 이성교제 포기했어요”


-을지로입구역에서 진료하면 환자가 어느 정도 몰립니까.


“너무 많아서 진료를 다 못 볼 정도예요. 노숙인들은 일반 환자들보다 순응도가 좋지 않아요. 말을 못 알아 들으시니까 계속 소리를 질러야 하잖아요. 선생님들이 2시간 진료하면 진이 다 빠져서 더 하고 싶어도 오래 못하세요. 최대 2시간까지 진료하면 환자 40명 정도를 볼 수 있어요. 안타까운 건 진짜 치료가 필요하신 분들이 늦게 오시면 저희가 못 봐드린다는 거예요. 인력도 그렇고 자금력도 그렇고, 환자들을 욕심껏 많이 보지 못한다는 면에서 아직 한계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진료에 드는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나요.


“약은 제약회사에서 지원받고 있고 다른 비용은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스폰서를 구해서 충당하고 있어요. 기업 사회복지팀과 홍보팀에 무조건 전화를 걸었죠. 학생들이 찾아가서 무턱대고 ‘200만원 주세요’ 하면 누가 돈을 주겠어요. 그래서 ‘프리메드 버스가 1㎞ 주행할 때마다 1만원씩 달라, 그 대신 버스 외벽에 스폰서들의 광고를 싣겠다’고 했어요. 이런 방법으로 유엔환경계획(UNEP), 포스코, 사랑의열매로부터 후원 약속을 받았어요. 구급함은 KT&G 복지재단에서 지원받고 있고요. 행운도 따라줬던 것 같아요. 처음에 중고 버스를 사서 개조할 때 UNEP와 포스코 측에 ‘2000만원 주면 개조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저희도 알고 있었어요. 아무리 싸게 해도 훨씬 더 큰돈이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버스 개조 회사를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정말 마음씨 좋은 사장님을 만난 거예요. 덕분에 저희가 가진 돈으로 버스를 고칠 수 있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희망이란 게 이런 겁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뜻한 대로 이뤄진다는 거죠.”


-또다른 수익 모델은 무엇이 있습니까.


“크리스마스 실이 결핵 환자를 돕는 데 쓰이는 것처럼 저희도 프리메드 디자인을 만들어서 판매하려고 합니다. 지금 티셔츠와 가방을 온라인(http://marketpress.co.kr/freemed)에서 팔고 있어요. 수익이 나면 선천성 심장병 소아를 돕는 ‘1000원 수술’에 쓸 생각이에요. ‘1000원 수술’은 시민들한테 1000원씩 기부 받아서 이 돈으로 선천성 심장병 소아를 지원하는 프로젝트예요. 모금 방식은 이렇습니다. 을지로입구역에 아기 사진을 붙인 패널을 세워놓고 시민들한테 사진 위에 스티커를 붙이게 해요. 1000원을 기부하면 스티커 1장을 받을 수 있죠. 20만원을 기부 받아 스티커 200개를 붙이면 사진 하나가 꽉 차는데 20만원이면 선천성 심장 기형 소아가 초음파 검사를 1회 받을 수 있어요. 시민들 호응이 좋아서 한번에 30만~35만원씩 모금이 돼요. 덕분에 최근 ‘1000원 수술’의 첫번째 지원 환자를 선정했습니다. 생후 2개월 소아인데 아기 어머니는 탈북자이고 아버지는 아기만 낳고 사라진 경우예요. 어머니가 500만원 정도 부채를 얻어서 우여곡절 끝에 아기 수술을 했는데 그 후에 치료를 못 받고 있어요. 저희가 도와야죠. 소아들을 더 선정해서 한 달에 120만원까지 지원할 계획입니다.”




-디자인 제품은 잘 팔립니까.



“아직 시작 단계라서 친구들한테 선물하거나 반 강매를 하고 있어요(웃음). 프리메드가 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좋은 곳에 돈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 돈을 잘 쓰게끔 하는 일인 것 같아요. 기부를 하고 싶어도 내 돈이 어떻게 쓰일지 못 미더워서 안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거든요.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길은 결과를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료 버스를 만들겠다고 했으면 만들어야 하고, 모금해서 누구 수술하겠다고 했으면 소아를 선정해서 수술하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보여줘야 해요. 이런 것을 잘할 수 있다는 게 대학생들의 강점이죠.”


-사회적기업이라고 하기엔 아직 수익모델이 탄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디자인 제품 판매는 이제 시작이고 모금과 후원이 재원의 대부분이네요.


“사회적기업이란 게 외부 스폰서십 0%로 운영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인간의 착한 본성에 호소하지 않고서도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저도 수익 모델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할 수 있는 선까지는 수익 모델을 통해 커버하고 나머지는 가능한 한 스폰서십을 많이 끌어온다는 게 저희 방침이에요. 그게 가장 현실적이죠. 사실 프리메드가 사회적기업인지 아닌지 그 이름이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동아리라고 한다면 동아리고 NGO(비정부기구)라고 한다면 NGO일 수도 있는 거죠. 이름보다는 활동 하나하나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게 더 중요하거든요. 지금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은 아니에요. 1~2월에 열심히 해서 많이 안정화됐어요.”


-사회적기업은 기업이면서 동시에 사회운동이기도 한데, 평소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본과 1학년이던 2007년에 열린우리당 대학생 정책자문위원단이란 것을 해봤어요. 저희 부모님이 보수적이니까 보수적인 친구들의 얘기는 들어볼 필요가 없었고 개혁적이란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고 주관을 확립했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전문성이 있는 분야에서 남들을 많이 돕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게 제가 갖고 있는 사상이에요.”


-한창 바쁜 시기일텐데 공부는 언제 합니까.


“어떤 기업에서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있는데 저번 학기 성적이 좋지 않아서 잘리는 줄 알았어요. 이사장님이 ‘좋은 일 하니까 봐주겠다’고 하셔서 안 잘렸어요(웃음). 자랑하려는 건 아니고, 제가 좀 독해요. 커피를 많이 마셔서 잠을 줄이고 있고요. 또 한가지 중대한 결정을 내렸는데 여자친구를 안 만나요. 큰 것을 포기했죠(웃음).”


-공부와 기업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은 걱정하실 것 같은데.


“부모님은 안 좋아하시죠. 저희 아버지가 의사라서 이런 게 의사를 하는 데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아시거든요. 저희 어머니도 싫어하시지만 가끔씩 감동적인 말씀도 해주세요. 2월7일에 활동 시작한다니까 ‘고사 지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하시고요. 그래도 ‘언제 프리메드 대표 그만둘 거냐’는 말씀을 하루에도 5번 정도는 하시는 것 같아요.”


-대표는 언제까지 할 생각입니까.


“변화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물려줄 수 있어요. 대표 자리에 연연해서 좋게 된 경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웃음). 제 책임은 대표 자리를 믿을 만한 친구한테 넘기는 것인데 이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생각하고 있는 게, 제가 없어도 일이 돌아갈 수 있게 프로젝트의 프로세스를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겁니다. 지금은 어디 한군데서 펑크가 나면 저한테 연락이 와요. 대표한테 업무 부담이 많이 오는 구조인 거죠. 그래서 대표 없이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간결하게 프로세스를 짜서 후임자에게 넘기는 것이 제가 해야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앞으로 사업을 어느 방향으로 진행시킬 계획인가요.


“일단 프리메드 버스와 디자인, 1000원 수술, 홈 비지팅 등 4개 프로젝트를 올해 상반기까지 계속 진행할 겁니다. 그리고 오는 9~10월쯤 손님들 모셔놓고 자체적으로 컨퍼런스를 열어서 정리하는 자리를 가지려고 해요. 이 자리에서 활동 내역을 보고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해 볼 생각입니다. 저희가 법인도 아니고 누가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 어떤 법인이나 단체보다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주위의 피드백도 잘 수용하는 단체로 성장해 가고 싶어요.”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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