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기 교수님의 ‘창조적 인생’ 특강
양준영 씨가 들려주는 아버지와 나의 ’관계‘ 이야기
유난히 따뜻하던 5월 17일, 산업공학과 학생들은 용지 앞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야외수업을 하자는 교수님의 말씀 덕분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날씨가 좋아서 모두 밖에 나가 뛰어 놀면서 봄을 만끽하고 싶었을 텐데요. 교수님의 배려 덕분에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졸업생 양준영 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자신에겐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라 조금 창피하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한 양준영 씨. 어린 시절 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를 회상하면 떠오르는 세 장면은 그가 좋아하던 기타를 부수는 아버지, 그를 때리는 아버지, 아버지는 분명 지옥에 갈 거라고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자신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아버지란 지옥에 가 마땅한 사람이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던 그가 다른 친구를 때려 부모님에게 전화가 갔을 때 어머니는 울었고 아버지는 그를 야구방망이가 부러질 때까지 때리셨습니다.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었습니다. 그에게 남아있던 건 두려움과 미움 그리고 조금 남은 애정이었습니다. 부자간의 마지막 애증이라고나 할까요. 속으로는 결국 내가 친구를 때린 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미안함도 있었습니다.
관계를 개선해야겠다고 늘 마음은 먹었지만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로 비싼 금액의 카드청구서가 날아오고 어머니와 싸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와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때는 왜 말을 안 듣냐고 꾸짖음을 들었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공부하라고 이야기가 좀 줄었습니다.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 아버지를 볼 일이 없다는 게 좋았다고 합니다. 누구나 그렇듯 자식이 군대 가기 직전이 되니 조금은 너그러워졌다는 그의 아버지. 그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입대를 했습니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고 그의 마음을 적었습니다. 편지를 받은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는 사실 감수성이 예민한 분이었습니다. 군대에 가서는 아버지를 똑 닮은 중대장에게 고통 받았습니다. 중대장은 아버지의 아바타 같은 분이였습니다. 어느 날은 몸이 아파서 병가를 내려고 하는데 무슨 이런 일로 병가를 내냐고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도 고집을 부려 나오고 보니 나가면 알아서 하라는 중대장이 조금은 무서워졌습니다. 오죽 무서웠으면 복귀도 일찍 하고 교회에 가서 살려달라고 기도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들어가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다르구나. 그리고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도 내가 내 맘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관계의 해결책은 그가 그렸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상해야 한다. 아버지는 성실해야 한다. 아버지는 검소해야 한다. 그가 만든 틀을 버리고 나니 아버지가 바로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동안 내가 바라는 아버지를 너무 투영해서 봤던 거였구나. 완벽한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와 자신을 옭아매었던 사슬을 풀어내고 나니 자신의 꿈도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양준영 씨는 전남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보기 드문 경우지만 꿈이 확실했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때는 꿈이 소설가였다는 그, 개인적인 이야기니 흘려들어도 된다고 말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관계에 아픔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또 산업공학과 학생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그가 써낸 소설을 읽을 날이 오길 바랍니다.